전력망은 왜 항상 ‘최적화’되지 않을까 — 비효율이 시스템을 살리는 물리적 이유
현대 기술의 핵심 목표 중 하나는 최적화다.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내고, 낭비를 줄이며,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좋은 설계로 여겨진다. 많은 산업 시스템은 실제로 이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전력망은 다르다. 전력 시스템은 놀라울 정도로 비효율적인 선택들을 유지하고 있다. 예비 발전소를 놀리고, 송전 용량을 남겨두며, 일부 설비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 비효율은 실수도, 기술 부족도 아니다. 전력망이 살아남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한 구조다.
1. 전력망에서 ‘최적’은 가장 위험한 상태다
전력망을 수학적으로 최적화하면, 모든 발전 설비가 최대 효율로 작동하고 여유 자원은 최소화된다.
하지만 이런 상태는 아주 작은 충격에도 무너진다. 예비력이 없는 시스템은 예상 밖의 수요 증가나 설비 고장을 감당할 수 없다.
전력망에서 최적화는 곧 여유의 제거를 의미하며, 이는 곧 취약성이다.
2. 예비력은 낭비가 아니라 생존 공간이다
전력 시스템에는 항상 사용되지 않는 발전 용량이 존재한다. 겉으로 보면 이는 명백한 비효율이다.
하지만 이 예비력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즉시 투입될 수 있는 완충 장치다. 전력망은 “문제가 없을 때”가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를 기준으로 설계된다.
3. 송전망은 항상 덜 채워진 상태로 운영된다
송전선은 이론적으로 더 많은 전력을 흘릴 수 있지만, 실제 운용에서는 그 한계보다 낮은 수준에서 사용된다.
이는 과부하로 인한 열 문제와 연쇄 고장을 막기 위한 선택이다. 효율을 조금 포기하는 대신,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을 확보한다.
4. 비효율은 제어 시간을 벌어준다
전력망의 여유 자원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만들어내는 장치다.
예비 발전기, 남는 송전 용량, 느슨한 제어 조건은 모두 운영자와 자동 제어 시스템이 개입할 시간을 확보해 준다.
최적화된 시스템에는 이런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5. 완벽한 효율은 연쇄 붕괴를 부른다
모든 요소가 빡빡하게 연결된 시스템에서는 하나의 문제가 곧바로 전체 문제로 확산된다.
전력망이 일부러 느슨한 연결 구조를 유지하는 이유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충격을 흡수하고 분산하기 위해서다.
6. 전력망은 비용보다 실패 비용을 더 중요하게 본다
전력 시스템에서 가장 비싼 것은 남는 설비가 아니다.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을 때의 사회적 비용이 훨씬 크다.
그래서 전력망은 운영 비용을 조금 더 쓰더라도, 실패 확률을 낮추는 방향을 선택한다.
7. 최적화는 평균을 위한 전략이다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최적화는 대부분 평균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전력망을 위협하는 것은 평균이 아니라 극단적인 상황이다. 폭염, 한파, 대형 사고 같은 조건에서는 최적화된 시스템이 가장 먼저 무너진다.
8. 전력망은 ‘견딜 수 있는 시스템’을 목표로 한다
전력 시스템의 목표는 최고의 효율이 아니다.
버틸 수 있는가, 복구할 수 있는가, 다시 작동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전력망은 일부 비효율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9. 비효율은 설계 실패가 아니라 설계 철학이다
전력망의 느슨함, 여유, 중복은 단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안전 장치다.
이는 대규모 물리 시스템이 공통적으로 선택하는 생존 전략이다.
10. 전력망은 최적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정적이다
전력망은 언제나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전력망은 효율보다 생존을 우선한다.
비효율은 낭비가 아니라, 대규모 시스템을 지키는 비용이다.